나는 대학원에 가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대학원에 가라는 아빠와 아시는 선교사님의 권유가 있었을 뿐이었고 그 이후로 교회에서 유학생 사역을 틈틈히 섬기며 사모님의 권유로 틈틈히 대학원 준비를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미국 대학원 시험인 GRE시험을 보러가는 지하철 나는 시험을 보러 가면서도 별 기대가 없는 믿음 없는 나의 모습을 회개하게 되었고 그날 시험은 내가 공부하고 예상했던 점수보다 훨씬 더 잘 나왔다. 대학원에 진짜 갈려나 하는 반신반의에 찬 마음으로 대학때 교수님들과 교회 목사님께 추천서를 받았고 많은 친구와 여러분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대학원 준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후 나의 삶은 긴 기다림 가운데 유학생 섬김 사역과 말씀 양육 등으로 큰 기대 없는 긴장 가운데 나날들이 지나갔고 끝끝내 가장 힘들었던 하루의 다음날 새벽 합격 소식을 유펜에서 부터 들을 수 있는 영예를 얻었다. 그 후 바로 나는 한국에서 미얀마로 한달간 휴가를 가게 되었고 약 사주동안의 단헐적 단식을 통한 휴식의 계기가 있었다. 미국에서 GPE 단체에서 또한 UN의 전 Ambassador의 미얀마 (로힝야 족들) 관한 국제단체들의 관심과 프로젝트에 대해서 배우며 어느한켠엔 내가 아빠와 아시는 선교사님의 교육학을 공부 했으면 하는 바램과 학교에서 추천해주었던 국제교육개발 프로그램이 나중에 미얀마 같은 개발도상국에 교육을 개발해 주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하며 생각해 본적이 있다. 일본에서 온 인도에서 온 스페니쉬 계통의 미국 친구들 파키스탄 한국 중국 등에서 온 동료학생들을 만나며 또한 학교를 짓는 단체들에 관한 사례들을 들으면 나도 과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커리큘럼부터 펀딩까지 선생님들 트레이닝 까지 이모든것을 감당 할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특히나 남북 관계에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는 탈북민들에 관한 관심을 많이 갖고 있기에 학회와 마지막 발표 내용에서는 탈북민들의 교육에 대한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 뉴저지 사모님과 여러 교회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할수 있었지만 성대한 졸업식 이후 나의 건강은 마지막 코스타 이후로 급격히 저조 해 갔고 한국에 돌아온 나는 번아웃 상태가 되었다. 그저 한줄기 빛을 본 거라곤 현승원 대표의 다니엘 기도회 간증이자 가족의 선교사님 후원 이야기 그리고 쓰리제이에듀 시작과 많은 학교들을 짓는 프로젝트를 후원하게 된 이야기.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꿈이 싹트게 되는 시작이었다. 그렇게 난 한국을 떠나 미얀마로 오게 되었고 예전에 한국에서 학원에서 가르쳤던 경험들을 토대로 미얀마에 있는 한국 국제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번에 한곳에서 8명 가까이의 학생들을 만나게 되어 수업은 감사하게도 큰 어려움없이 진행 되었다. 예전 고등학교 ISY에서의 두차례 2학년과 10학년 대타 생활 그리고 ILBC 국제학교 합격 소식. 좋은 소식들이 들려왔고. 그 이후 코비드 과외의 중단과 동시 난 그동안 과외 했던 내용들을 토대로 교재 만들기 등 여러 교육에 관련된 기술적인 도구들을 준비 했고 독서에 매진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ILBC개학을 앞두고 있는 현재 내일 수업을 앞두고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앞으로 ILBC선생님이라는 직장에서의 경험이 어떤 이야기들로 펼쳐질지 모르며 이 생각들을 기록하고 서이다.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글들이 어떤 연출이 기달리고 있을지 나는 모르지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이 길 위에도 또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더 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이야기들이 모여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2020. 5.24 개학을 앞두며 방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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